그 자리/천양희 욱아, 들어보렴 참나무가 욱욱거리며 강물에 떠내려가는구나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뽐내던 참나무가 그까짓 바람쯤이야 그까짓 비쯤이야 한던 나무가 참, 나무가 아니었구나 올라갈 줄 모르는 물 속에서 허우적대며 내려가는구나 자존심은 돌멩이처럼 굴러 곤두박질치는구나 끙, 끙끙 갈배밭을 지날 무렵 참나무는 더욱 욱욱 거리는구나 그까짓 갈대쯤이야 비웃던 갈대들이 쓰러지지 않았구나 바람에 날리는 갈대가 그 자리에 있었구나 욱아, 들어보렴 갈대는 바람이 불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는구나 고개를 숙이는 자에게 바람은 그냥 지나간다는구나 그렇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