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1315

봄, 참 고얀/이선영

(오늘이 국경일이라는 걸 깜박하고 도서관엘 왔습니다. 어째ㅠ 스벅엘 갈 건지 아니면 로비의 휴게실에서 기다릴 것인지.~ 허둥대고 있습니다.) 봄,참 고얀/이선영 봄,참 고얀 봄 봄이 오니 어쭙잖은 시인의 혀끝은 놀릴 일이 없다네 봄 햇살이 숨어있던 산수유와 동백을 캐내고 복수초 꽃망울을 서둘러 틔워 겨울잠에서 채 깨어나지 못한 시인은 미처 첨삭할 겨를조차 없어 멀뚱 빈둥거리느니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할끔 빨아대며 봄꽃 속에 늘어져라 들어앉은 이 천하의 게으른 혀. 세 치 혀와. 짧은 미각, PC로 쓰는 시는 물러가라 시에도 리다이트? 봄이여, 꽃으로. 피는 네 시가 가장 빼어나구나! 나는 철철이,세상은 뱅글뱅글/이선영 나는 철철이 늙어가고 세상은 뱅글뱅글 젊어지네 낯설고도. 새로운 젖살을 불쑥 내미네..

문학 이야기 2024.10.09

수종사 뒤꼍에서/공광규

수종사 뒤꼍에서/공광규 신갈나무 그늘 아래서 생강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멀리서 오는 작은 강물과 작은 강물이 만나서 흘러가는 큰 강물을 바라보았어요 서로 알 수 없는 곳에 와서 물을 합쳐 알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는 강물에 지나온 삶을 풀어놓다가 그만 똑!똑! 나뭇잎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눈물에 반짝이며 가슴을 적시는 나뭇잎 눈물을 사랑해야지 눈물을 사랑해야지 다짐하며 수종사 뒤꼍을 내려오는데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 뒤돌아보니 나무 밑둥에 단정히 기대고 있는 시든 꽃다발 우리는 수목장한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던 거지요 먼훗날 우리도 이곳으로 와서 나무가 되어요 나무 그늘 아래서 누구라도 강물을 바라보게 해요 매일 매일 강에 내리는 노을을 바라보고 해마다 푸른 잎에서 붉은 잎으로 지는 그늘이 되어 한..

문학 이야기 2024.10.04

꽃이 꽃인 것은/배창환

꽃이 꽃인 것은/배창환 꽃은 때를 알아서 피고 때맞춰 진다 꽃이 꽃인것은 생이 찰나인 줄 알고 한목숨 다해 피어나기때문이고 선자리서 목숨껏 울다 말없이 돌아갈 줄 알기때문이다 가면서도 까만 눈망울을 가을햇살 맑은바람에 휑구어 마음 가난한사람은 누구나볼수있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자리에 걸어두고 가기 때문이다 ........................................ (혼자 보기가 아까워서 발췌했습니다/바람재들꽃에서)

문학 이야기 2024.07.15

사랑법 첫째/고정희

사랑법 첫째/고정희 그대 향한 내 기대가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내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의/ 커다란 돌맹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름 짓무른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어리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문학 이야기 2024.07.12

추신(秋信)/이경애

추신(秋信)/이경애맷비둘기 울음 자욱한 숲에는 푸른 연기같은 청수국의 흔들 수런거림거립니다허공답보에 능한 가을이 휘저운 연적지*수면 위에는 붉은 잉어온 몸으로 일필휘지 갈겨 쓴 엽신들이 뱅글 뱅글 맴을 돌다가 어느곳으로가  우르르 몰려갔다 몰려오고....그러나 오늘의 풍경은 다시 적막합니다내 쓸모없는 약지에 호저가시처럼 박힌 그대는어찌 지내시는지.... 나에게는 늘그대처럼 계절이 가고그대처럼 그리움이 또 오고나는 매일무슨 마음으로 웃는지는 생각 않고무슨 뜻으로 오는 줄도 모르고그렇게 살고 있습니다.....그러나그대만큼은이리 살지 말아요*연적지 : 춘천소재 강원대학교 연못(네이버 문학 카페에서. 옮겨왔습니다.)

문학 이야기 2024.07.01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김재진

(양평의 믈소리길이 있는 오솔길입니다. 굽이 굽이 길이 구부러져있었구요.~ 또 다른 길은 쭈욱 뻗은 길.~ 시원한 길입니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란 반려(伴侶)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 듯 한 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

문학 이야기 2024.06.20

날개/고정희

날개/고정희 셍일선물을 사러 인사동에 갔습니다 안개비 자욱한 그 거리에서 삼천도의 뜨거운 불기운에 구워내고 삼천도의 냉정한 이성에 다듬어낸 분청들국 화병을 골랐습니다 일월성신 술잔 같은 이 화병에 내 목숨의 꽃을 꽂을까. 아니면 개마고원 바람소릴 매달아 놓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장백산 천지연 물소리 풀어 만주대륙 하늘까지 어리게 할까 가까이서 만져보고 떨어져서 바라보고 위아래로 눈 인두질하는 내게 주인이 다가와 말을 건넸지요 손님은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선물을 고르고 있군요 이 장사 삼십년에 마음의 선물을 포장하기란 그냥 줘도 아깝지 않답니다 도대체 그 분은 얼마나 행복하죠? 뭘요... 마음으로 치장한들 흡족하지 않답니다 이 분청 화병에는 날개가 달려있어야 하는데 그가 이 선물을 타고 ..

문학 이야기 2024.05.30

내 청춘이 지나가네/박정대

(새빨간 줄장미의 계절입니다. 담을 타고 얼굴을 내밀고 있군요.~ 요즘은 공중도덕의 힘인지.~ 제 것이 아니면 절대로 꺽지않습니다.~ 좋아 좋아.~ 그래야쥐.~ㅎ) 내 청춘이 지나가네/박정대내 청춘이 지나가네말라붙은 물고기랑 염전 가득 쏟아지는 햇살들그렁그렁 바람을 타고 마음의 소금 사막을 지나당나귀 안장 위에 한 점 가득 연애편지만을 싣고내 청춘이 지나가네. 손 흘들면 닿을 듯한애틋한 기억들을 옛 마을처럼 스쳐 지나며아무렇게나 흙먼지를 일으키는 부주의한 말굽처럼무너진 토담에 히이잉 짧은 울음만을 던져둔 채내 청춘이 지나가네, 하늘엔바람에 펄럭이며 빛나는 빨래들하얗게 빛바랜 마음들이 처음처럼 가득한데세월의 작은 도랑을 건너 첨벙첨벙철 지난 마름 풀들과 함께 철없이내 청춘이 지나가네, 다시 한 번 부르면뒤..

문학 이야기 2024.05.23

장석주 , '모란이 필 때 보았던 당신'

장석주, '모란이 필 때 보았던 당신'... 여름 초입인데,햇빛은 벌써 빙초산같이 뜨겁습니다. 정수리를 꿰뚫듯 작렬하는 땡볕 아래에서 존재 자체가 곧 녹아내릴 듯 합니다. 서운산 산딸나무는 흰꽃을 피우고,산벚나무 열매는 까맣게 익어갑니다. 오전 내내 감나무 아래를 돌아다니던 유혈목이는 그늘진 수도가 시멘트 바닥에서 엎드려 쉬고 있습니다. 물통을 들고 나가다가 그의 휴식을 방해할까봐 돌아섭니다. 해가 울울창창한 밤나무숲 너머로 지고,황혼이 새의 깃털처럼 떨어지겠지요. 날개 달린 것들은 공중에 떠서 날고, 더위에 지친 날개없는 것들은 지상에서 고즈녁한 저녁을 맞습니다. 내 안의 있는 노동자도 문설주 아래로 내려오는 초록늑대거미를 바라보며 고요합니다. 이 저녁 당신은 멀리 있고 나는 박복한데 그 박복이 데면데..

문학 이야기 2024.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