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시인 2

그 자리/천양희

그 자리/천양희 욱아, 들어보렴 참나무가 욱욱거리며 강물에 떠내려가는구나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뽐내던 참나무가 그까짓 바람쯤이야 그까짓 비쯤이야 한던 나무가 참, 나무가 아니었구나 올라갈 줄 모르는 물 속에서 허우적대며 내려가는구나 자존심은 돌멩이처럼 굴러 곤두박질치는구나 끙, 끙끙 갈배밭을 지날 무렵 참나무는 더욱 욱욱 거리는구나 그까짓 갈대쯤이야 비웃던 갈대들이 쓰러지지 않았구나 바람에 날리는 갈대가 그 자리에 있었구나 욱아, 들어보렴 갈대는 바람이 불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는구나 고개를 숙이는 자에게 바람은 그냥 지나간다는구나 그렇다는구나

문학 이야기 2023.02.20

그에게 묻는다/천양희

그에게 묻는다/천양희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은 늘 같은데 하늘은 볼 때마다 다르다 하겠는지요 서울살이 삽십 년 동안 나는 늘 같은데 서울은 볼 때마다 다르다 하겠는지요 길에는 건널목이 있고 나무에는 마디가 있다지요? 산천어는 산속 맑은 계곡게 살고 눈 먼 새는 죽을 때 한번 눈뜨고 죽는다지요? 동박새는 동백꽃에서만 살고 기린초는 척박한 곳에서만 산다지요? 귀한 진주는 보잘것 없는 조개에서 나오고 아름다운 구슬은 거친 옥돌에서 나온다지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고 모든 문제는 답이 있다지요? 사는 것이 왠지 슬픈 생각이 든다고 하겠는지요 슬픔을 가질 수 있어 내가 기쁘다고 하겠는지요

문학 이야기 2023.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