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수종사 뒤꼍에서/공광규

청포도58 2024. 10. 4. 10:49


수종사 뒤꼍에서/공광규

신갈나무 그늘 아래서 생강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멀리서 오는 작은 강물과
작은 강물이 만나서 흘러가는
큰 강물을 바라보았어요
서로 알 수 없는 곳에 와서
물을 합쳐 알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는 강물에
지나온 삶을 풀어놓다가
그만 똑!똑! 나뭇잎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눈물에 반짝이며 가슴을 적시는 나뭇잎
눈물을 사랑해야지 눈물을 사랑해야지 다짐하며
수종사 뒤꼍을 내려오는데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 뒤돌아보니
나무 밑둥에 단정히 기대고 있는
시든 꽃다발
우리는 수목장한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던 거지요
먼훗날 우리도 이곳으로 와서 나무가 되어요
나무 그늘 아래서 누구라도 강물을 바라보게 해요
매일 매일 강에 내리는 노을을 바라보고
해마다 푸른 잎에서 붉은 잎으로 지는 그늘이 되어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 삶을 바라보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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