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시인 친구가 보내준 알록달록한 파프리카.~♪~♬~♥

청포도58 2019. 12. 13. 14:21



이른 아침에 택배가 왔어요.

작년에도 보내줘서 잘 먹었는데 또 보내준 시인 친구입니다. 즐거운 선물, 고마워요.^^*


색깔이 너무 곱지요?

나에게 치명적인? 점이 있다면.~~ 색깔에 죽고산다는 것이예요.

옷을 사거나 또 마트에 가서 야채를 살 때 칼라가 예쁘다..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사는 버릇이 있습니다.

결국 못입고, 못먹고.~~~버리는 것도 있지만, 그 정도의 즐거움은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빨강도 좋고, 노랑도 좋고, 주황도 좋아합니다.ㅎ


일단 3개씩 담아서 딤채 야채칸에 넣었어요.

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듯 합니다. 아쿠쿠 예뻐랏.


우리 연준이의 볶음밥 재료로 쓰일 것이고,  사과쥬스 만들 때 한조각 넣을 것이고, 잡채도 만들 때에도 알록달록하게 넣겠어요.

이제는 팔도 거의 다 나았으니 모범주부로 돌아오겠습니다.

고마워요, 친구..잘 먹을께요.~~



어제는 시작은어머님의 병문안을 다녀왔어요.

시댁의 전통?은 사촌들끼리도 형제 못지않게 잘 지냅니다.


호야리씨나 형님들이 이천에서 서울로 유학?을 와서는 이 집에서 많이 신세를 진 모양이더라구요

예전에는 많이들 그랬잖아요.

다 들 없었을 때여서 싫기도 했으련만 아들처럼 잘 보살피셨다고 합니다.

그냥 올려보내기만 하면 어쩝니까? ㅠㅠ

어쨌든 그렇게 살았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언제나 용돈을 챙기고 이것 저것 일이 있을 때마다 형님들도 그렇고 호야리씨도 그렇고.~ 어쩌면 시부모님보다 더 챙긴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동안 정신을 놓으셔서 다 못알아봤다던데, 갑자기 눈을 딱 뜨시더니 호야리씨 이름을 부르시고 나를 보시고는 든든이 엄마라고 똑똑히 말씀하시네요.

호야리씨는 결국 눈물을 보였어요. 작은 어머니도 우시고..어째..ㅠㅠ


작은 아버님은 노치원엘 다니신답니다.

유치원..노치원..아시겠지요?

이 정도의 시기가 되니 누가 누구를 돌보는 일은 힘든 일입니다.

한 분은 병원에, 한분은 집에서 노치원엘, 그렇게 사시고 계셨어요.


작은어머님은 야구 경기를 보는 것이 취미이신 분입니다.

막내 아들이 전용으로 보시라고 TV를 바로 앞에 달아드렸더라구요.

막내딸은 미술치료사인데 엄마가 계시는 병원에서 일한다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어제도 엄마곁에서 챙기고 있었어요


언제 또 연락을 했는지 캐나다에 있는 작은어머니의 큰딸이 호야리씨에게 톡을 바로 보내왔어요.

고맙다 호야리야.~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통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있습니다.


회복할 건강은 아니잖아요. 90세이시니까.~

계시는 동안 아프신 곳은 없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열심히 잘 사셨어요. 100점입니다.~^^*



 

PS :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된다구요?


       우리가 병원에 도착을 하니 시누이가 작은어머니를  깨웠어요

       엄마, 엄마, 엄마..하니까.....(옆의 침대에서 누워계시던 분들이 분명히 주무시는 것 같았는데도) "응""왜" "네"   

       동시에 대답을 하셔서 다 들  빵 터졌어요.

       자꾸 생각나는 장면입니다.


       무의식속에서도 엄마라는 것은 잊지못할 단어인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