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의 세상보기

소리 없는 소리/법정

청포도58 2022. 12. 15. 10:31

 

(12월 중순에 바라본 양평의 하늘은.~ 너무 파래서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맑디 맑은 겨울 하늘을 눈이 시도록 바라다보았습니다.)

 

 

소리 없는 소리/ 법정

 

누가 찾아오지 않으면 하루 종일 가야 나는 말할 일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새삼스럽게 외롭다거나 적적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넉넉하고 천연스러울 뿐이다.

홀로 있으면 비로소 내 귀가 열리기때문에 무엇인가를 듣는다.

새 소리를 듣고 바람 소리를 듣고 토끼나 노루가 푸석거리며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시드는 소리를, 지는 소리를, 그리고 대로는 세월이 고갤ㄹ 넘ㅇ면서 한숨 쉬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므로 듣는다는 것은 곧 내면의 뜰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낯 선 사람들을 만나 말대꾸를 하고 난 후면 허전하기 이르 데 없다.

모젖까지 찰랑 찰랑 고였던 맑은 말들이 어디론지 새어 버린 것 같다.

지난 여름에도 아래 마을에 내려가 수련을 하는 학생들한테 서너 시간 지껄이고 낫더니, 올라오는 길에는 몹시 허전하여 후회한 적이 있었다.

소리 내어 말하기보다는 듣는 일이 얼마나 현명한 태도인가를 거듭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미하일 엔데의 동화 '모모'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폐허가 되어 버린 원형 극장으로 고아 소녀인 모모를 찾아간다.

그들은 모든 것을 그 어린 소녀에게 털어 놓는다.

소녀는 다만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줄 분인데 방황하는 사람들은 정착을, 나약한 사람들은 용기를 , 불행한 사람과 억눌린 사람들은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눈을 뜬다.

 

오늘 우리들은 되는 소리든 안 되는 소리든 쏟아 버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남의 말에 차분히 귀 기울이려고는 하지 않는다. 다 들 성미가 급해서 듣고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른 아이할 것 없이 텔레비젼 앞에서처럼 얌전히 앉아 들을 줄을 모른다.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은 침묵을 익힌다는 말이기도 하다.

침묵은 더 할 것도 없이 자기 내면의 바다이다.

말은.~ 진실한 말은 내면의 바다에서 자란다.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하고 남의 말만 열신히 흉내 내는 오늘의 우리는 무엇인가.

 

다시 모모이 이야기.~

별들이(어떤 사물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우리에게 들려눈 이야기를 친구에게 전하려면.~ 우선 그것에 필요한 말이 우리 안에서 자라야한다. 다시 말해 기다림의 인내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씨앗처럼 기다리는 거야.~ 움이 돋아나기까지 땅 속에 묻혀 잠자는 씨앗처럼'

 

현대인들은 기다릴만한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을 적절히 쓸 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벗를 기다리면서 택시를 잡기 위해 줄을 지어 서있으면서도 그 시간을 유효하게 쓰지 못라고 흘려버리기 일쑤이다.

자기 생명의 순간들을 아무렇게나 흘려버린다. 그러면서도 입버릇처럼 '시간이 없어서, 그럴 여가가 없어서'라고 한다.

 

시간의 주재자 호러 박사가 모모에게 들려 준 이야기다.

'시간은 참 된 소유자를 떠나면 죽은 시간이 되고 말아.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것이 참으로 자신의 시간일 때만 그 시간은 생명을 갖게 되는 거란다.'

 

열린 귀는 들으리라.~ 한때 무성햇던 것이.~ 져버린 이 가을의 텅 빈 들녘에 끝없이 밀려드는 소리를.~~ 자기 자신의 꽃들을.~~

(1977) p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