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멸렬/허연
늦겨울 짚더미에 불이 붙는다. 알갱이 다 털어내고 껍데기만 남은
것들은 타닥 타닥 뼈소리를 내며 재가 되고 겨울은 그렇게 물끄러미
먼지가 된다. 그을린 소줏병 몇개와 육포 몇조각이 누군가가 바로 전
에 시키지도 않은 자기 변론을 했음을 알려준다. 짚불 앞에서 느끼는
거지만 인생에는 지리멸렬한 요소가 있다. 깔끔하게 털지 못하는 그
무엇. 질척거리는 헛소리 같은 게 있다. 가늘고 긴 인생들에게 불꽃 몇
개가 날아든다. 잔 하늘에선 눈이 내렸다. 헛소리가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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