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두고 싶은 순간/박성우
시외버스 시간표가 붙어있는
낡은 슈퍼마켓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래된 살구나무를 두고 있는
작고 예쁜 우체국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유난 떨며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어서
유별나게 더 좋은 소소한 풍경,
슈퍼마켓과 우체국을 끼고 있는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아 저기 초승달 옆에 개바라기!
집에 거의 다 닿았을 때쯤에야
초저녁 버스정류장에
쇼핑백을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돌아가 볼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으나, 나는 곧 체념했다
우연히 통화가 된 형에게
혹시 모르니, 그 정류장에 좀
들러 달라 부탁한 건, 다음날 오후였다
놀랍게도 형은 쇼핑백을 들고 왔다
버수정류장 의자에 있었다는 쇼핑백,
쇼핑백에 들어있던 물건도 그대로였다
오래 남겨두고 싶은 순간이었다
'문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의 됨됨이/박경리 (0) | 2021.03.30 |
---|---|
삶/박경리 (0) | 2021.03.29 |
어느 대나무의 고백/복효근 (0) | 2021.03.25 |
봄을 맞는 자세 1/이정하 (0) | 2021.03.22 |
이른 봄의 詩/천양희 (0) | 2021.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