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스크랩] 아름다운 오드리 햅번/ 공광규

청포도58 2017. 8. 28. 12:15



아름다운 오드리 햅번/ 공광규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오드리 햅번을 만난 것은

<로마의 휴일>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였다고

문화일보 19961021일자 32면에

고객과 함께 하는 세계로 미래로-삼성

전면 이미지 광고를 냈다

 

흰머리 쭈그렁탱이 할머니가

아프리카나 어느 나라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인간 막대기를 안고

세상을 슬프게 응시하고 있다.

 

영풍문고판 48쪽에 실린

믿어지지 않을 만큼 탱탱한 몸매로 번 재산을

기아의 아가리에 털어 놓고서야 천사가 되다니

피부가 헌 가죽부대처럼 쭈글쭈글 해져서야 아름다워지다니

 

평생을 거쳐 아무도 아무것도

제대로 사랑해보지 않은 나는

언제 나에게서 해탈하여

이 할머니처럼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 시집소주병(실천문학사, 2004)

......................................................


 오도리 헵번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탱탱한 몸매’를 자랑했던 시절을 우리는 기억한다. 헵번은 <로마의 휴일>이후 줄곧 성공가도를 달리며 20세기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뉴욕 5번가 티파니 보석상 쇼윈도 앞에서 커피를 들고 도넛을 먹는 까만 선글라스와 블랙드레스 차림의 그녀 모습은 끔찍하리만큼 아름다웠다. 1964년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정점을 찍은 헵번은 사상 최초로 출연료 100만 달러 배우가 된다. 당시 100만 달러는 엄청난 액수였다. 그런 헵번은 1967년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나 나이 마흔이 되기 전 배우 활동을 접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의 가정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두 번의 결혼 실패 후 쉰의 나이에 네덜란드 배우 로버트 월더를 만나 동거하면서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자선 활동에 매진한다.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인권 운동과 해외 봉사 활동에 참가해 제3세계 오지를 찾아다니며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일에 헌신했다. 헵번은 젊고 아름다웠던 황금기에 쌓아올린 부를 아프리카 난민 구제에 다 쏟았다. 특히 1992년 직장암 투병 중임에도 소말리아에 봉사활동을 가서 눈이 퀭한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은 지금 다시 봐도 뭉클하다. 사람들은 배우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며 큰 감동을 받았다. 젊은 시절 지방시가 디자인한 옷 등 명품을 고집했던 것과는 달리 그녀의 평범한 티셔츠와 헐렁한 옷도 인상적이었다.


 지금의 관점에서는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닌데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오래가지 못했고 소말리아 사진을 남긴 이듬해에 64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다.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아프리카 오지의 어린아이를 자신의 품에 꼭 안고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며 아이의 손을 잡아주던 모습은 이 세상 그 어느 여인보다 아름답고 거룩해보였다. 그 모습을 삼성에서는 기업이미지 광고로 활용했던 것이다. ‘고객과 함께 하는 세계로 미래로 삼성’은 삼성그룹이 당시 사용했던 슬로건이었다. 삼성은 1~3년을 주기로 슬로건을 바꿔왔다.


 그들이 그동안 내걸었던 슬로건을 보면 ‘인재와 첨단기술의 삼성’ ‘고마움을 아는 마음, 감사할 줄 아는 사회’ ‘세계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는 삼성’ ‘국민과 함께 세계로 도약하는 기업 삼성’ ‘믿을 수 있는 친구 삼성’ ‘우리의 대표브랜드 삼성’ ‘국민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 좋은 것은 다 갖다 붙였다. 실제로 그 이미지에 근접한 것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것이 더 많다. 삼성은 1970년대부터 20년 동안 <삼성찬가>를 공식 사가로 불러왔으나, 1993년부터 <우리의 노래>로 바뀌었다. “우리 모두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인류행복 실현하는 큰 뜻을 품고/ 지혜와 용기를 한데 모아서/ 미래의 꿈 펼치자 우리는 한가족/ 아~ 삼성~ 삼성~ 언제나 높이 솟아오르자/ 아~ 삼성~ 삼성~ 온누리 밝히는 빛이 되리라”


 그러나 ‘언제나 높이 솟아오르고자’ 애썼을지는 모르겠으나 ‘온누리 밝히는 빛이 되’진 못했고 때로는 어둠의 그늘을 드리웠다. 어제 이재용의 실형 선고는 그 인과의 응보였다. 그런데 오도리헵번이 비쩍 마른 아이를 안고 ‘세상을 슬프게 응시하고’있는 사진을 전면 이미지 광고로 싣는 것이 온당한가. 참으로 생뚱맞고 어쩌면 기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과거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주문했다. 삼성은 지금 다시 모든 것을 다 바꾸어 삼성으로 상징되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끊고 경제민주화를 선도할 때이다. 미래전략실의 해체는 그룹의 해체를 의미한다. 오도리헵번이 바뀌듯 삼성이 바뀌어야 대한민국의 미래도 바뀐다. 철학의 빈곤에서 벗어나 ‘이 할머니처럼 세상을 바라볼’ 날은 언제일까.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