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의 세상보기

(ESSAY)..나에게 魔法 걸기/박성희....수필가

청포도58 2016. 3. 15. 17:18

 

 


나에게 魔法 걸기/박성희


나는 인도 첸나이시(市) 바로 바깥 켈람바캄이라는 시골에 산다.

집 앞에는 강물이 흐르고, 정글이 있고, 탁 트인 바다가 있다.

29층 아파트는 육중한 건물이 받치고 있는 기둥과 외벽이 로코코양식으로 지어져 왕궁처럼 보인다.

대리석으로 휘두른 집에는 가정부와 운전기사가 있고, 집 주변엔 많은 경비원과 청소부가 충실하게 건물을 지킨다.


한번쯤 나도 동화 속 우아한 주인공처럼 환상적으로 살고 싶었다.

몇 번 취업에 실패하여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시작했다. 동생과 동생 친구의 자취방에 얹혀살며 여기저기 이력서를 낸 끝에 돈을 많이 준다는 주야간 직장을 잡았다.

그러나 밤을 꼬박 새우며 일한다는 것이 , 남의 돈을 내 돈으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쏟게 하는 지를 , 세상살이는 거저 되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절실히 깨닫는 나날이었다.


돈이 좀 모이자 지하 쪽방을 얻었는데 천장엔 쥐가 무엌엔 바퀴벌래가 득실득실하고 옆방은 무당 아줌마가 혼령들과 이야기를 나누는지 온종일 소란스러웠다.

밤낮이 바뀌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눈물의 빵이라도 먹으려면 노동을 해야만 했다.

아, 언제쯤 나의 이 지루하고 구차한 날들이 지나갈까.


내게도 신데렐라를 구해줄 요정이 나타나줬으면, 알라딘 램프이 요정이 날 어디론가 데려갔으면, 도깨비방망이가 있어서 원하는 것이 줄줄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화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고달픈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생각에 나는 괜한 몽상과 허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어떤 책에서 '간절히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젠가는 꼭 그렇게 되는 방향으로 살게 된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 그럼 나에게 마법(魔法)을 걸자, 내가 원하는 모든  것,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들을  조목조목 써 보자. 그러곤 주문을 걸자.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서 바라는 바를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질지도 몰라.


나를 햇빛이 잘 드는 넓은 2층 집에 살게 해 줘. 나는 온 동네를 다 뒤져서 거실을 같이 쓰는 그런 집을 구했다.

그런데 술주정뱅이, 이혼녀, 정신질환자가 이사를 오가면서 하루하루 시달렸다.

내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깨끗한 집을 얻어 줘. 이번엔 별과 달과 해만이 드나드는 4층 옥탑방에서 살게 됐다.


제발 나에게 안정된 직장과 원하는 신랑감을 구해 줘. 그동안 난 7번 이직 .실업 생활을 하며 10년이란 사회생활에 지쳐 있었다.

상사의 욕지거리, 담배 연기와 염료 냄새, 희롱,  그리고 몇 개월치 월급까지 떼여 생계가 막막할 정도로 두려운 시간이었다.

얼마 후 나는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지하철 공사장 감독실에 일자리를 얻었다.


PC 통신에서 내 이상형 남자를 만났다.

결혼하고 보니 남편은 월급을 꼬박꼬박 넉넉지 못한 시댁에 대주는 바람에 집 장만이 어려웠다.

임신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늘 아래 나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나에게 돈과 집과 아기를  줘'  돈이 없으니 마땅한 집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맘에 쏙 드는 새집이 나타났다. 더구나 집주인은 시세보다 싼 전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하여 그 집에 오래 살면서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6년, 11년만에 아기들도 품에 안았다.


'남편을 성공시켜 줘' 모든 일에 열성인 남편은 빠르게 승진했고, 대기업으로 스카우트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몇 년 간 적자에 허덕이던 인도 지사 주재원으로 발령 났다. 하필 덥고 냄새나고 더럽고 모든 게 열악한 나라 인도라니, 먹을 것도 변변한 마트도 없고 비행만 10시간 이상 걸리는 머나 먼 곳이라니, 내게 시련이 닥친 것 일까. 아니야, 어쩌면 이것은 내 인생을 바꿔줄 기회일지도 몰라, 멋진 일이 생기고 말 거 야.

마술같은 일이 벌어 질 거야. 모든 걱정은 사라져라.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은 반드시 이루어져라.


남편은 세 직원을 귀국시키고 혼자 남아 미친 듯이 일했다.

델리, 몸바이, 벵갈루루, 구자라트, 푸네, 첸나이, 어디든 일거리를 찾아 뛰었다. 경비를 줄이려고 첸나이 시를 벗어나

한국인이 없는 외곽에 집을 얻고 아이들은 학비가 싼 인도 학교를 보냈다.

고비를 넘기기 어려웠던 회사는 1년만에 흑자로 전환돼 안정을 찾아갔고 한국인이 없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빨리 영어를 익혀갔으며, 시내보다 반값인 시골 아파트는 왕궁같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것도 없다는 인도, 이 곳에서 마담으로 불리며 살아가는 나의 삶은 매양 새롭다.

해 뜨는 모습, 구름이 유랑하는 모습, 불타는 노을, 별과 달이 속삭이는 걸 산 없는 평야 지대라서 더 훤히 볼 수 있다.

강에서는 물소와 새 떼가 무리 지어 놀고, 정글에서는 온갖 과일이 익어가고, 바다에서는 엎치락뒤치락하는 하얀 파도와 꿈 실은 배가 떠다닌다.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열심히 살아도 내 뜻대로 안 풀릴 때도 있고, 타인때문에 힘들어질 때도 많다.

그래도 밝고 꿋꿋하게 꿈을 실현하기 위해 버텨야 한다.

나 자신에게 마법을 걸자. 이 세상은 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언젠가는 내가 바라는 대로 꼭 살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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