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살의 인터뷰/천양희
나는 오늘 늦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리고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당신이 무엇이 되고 싶었느냐고
입술에 바다를 물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노을이며 파도며
다른 무엇인가 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늘 실패했거든요
정열의 상실은 주름살을 늘리고
서쪽은 노을로 물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았냐고
해송을 붙들고 그가 물었을 때
희망을 버리니까 살았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내일에 속는 것보다
세월에 속는 것이 나았거든요
꽃을 보고 슬픔을 극복하겠다고
기울어지는 해를 붙잡았습니다
당신은 어느 때 우느냐고
파도를 밀치며 그가 물었을 때
행복을 알고도 가지지 못했을 때 운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보일까 말까 한 작은 간이역이 행복이었거든요
일흔 살의 인터뷰를 마치며
마흔 살의 그가 말했습니다
떨어진 꽃잎 앞에서도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고
참 좋은 인터뷰였다고
'문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짧고도 긴 이야기/김상미 (0) | 2021.05.19 |
---|---|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박용재 (0) | 2021.05.06 |
오월의 바람/박인환 (0) | 2021.04.30 |
너에게 쓴다/천양희 (0) | 2021.04.27 |
어떤 하루/천양희 (0) | 2021.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