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박우현
이십 대에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삼십대에는
마흔이 두려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 월간 <좋은 생각> 200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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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이 열여섯에 얼른 스무 살이 되고자 갈망했으나 서른은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서른이 넘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나 싶었다. 그렇게 낡은 나이로 남은 생을 산다는 건 지루하기 짝이 없을 거라 여겼었다. 그런데 세상에 두려울 게 없고 충분히 찬란하고 아름다운 나이였던 이십대가 싱겁게 가버렸고 서른이 되어 있었다.
그때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는 있지도 않았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내 나이 마흔을 넘겨서야 간간히 이 노래를 들으며 지나간 내 청춘을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인 ‘드가’의 표정으로 되돌아보았다.
그때만 해도 마흔이 청춘인 줄 몰랐다. 얼마 전 ‘나가수’에서 인순이가 이 노래를 부를 때서야 비로소 그때가 내 인생의 꽃이었음을 인정했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란 노래를 들으며 까닥까닥 다가오는 예순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다. ‘이제서야 알겠네. 우린 언제나 모든 걸 떠난 뒤에야 아는 걸까. 세월의 강위로 띄워 보낸 내 슬픈 사랑의 내 작은 종이배 하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너그러워졌을 뿐 여전히 ‘난 슬프게 멀쩡했다.’ 그러나 누구도 쉰을, 예순을 격려하거나 노래해주지는 않았다. 다만 비슷하게 나이 들어가는 박우현 시인의 이 시와 이 시의 다른 버전인 정현종 시인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란 시를 읽고부터 나는 되도록 나이를 세지 않으려는 버릇을 들이기로 했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 때 그 일이 노다지였는지 모르는데/ 그 때 그 사건이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것을’
참고로 박우현 시인은 1955년 대구출생으로 계간 <사람의 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시작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았다'가 있고, 현재 대구 원화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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