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스크랩] 시인 앨범 3/ 김상미

청포도58 2017. 7. 21. 21:39




시인 앨범 3/ 김상미

 

시를 우습게 보는 시인도 싫고, 시가 생의 전부라고 말하는 시인도 싫고, 취미(장난)삼아 시를 쓴다는 시인도 싫고, 남의 시에 대해 핏대 올리는 시인도 싫고, 발표지면에 따라 시 계급을 매기며 으쓱해하는 시인도 싫다.

남의 시를 훔쳐와 제 것처럼 쓰는 시인도 싫고, 조금씩 마주보고 싶지 않은 시인이 생기는 것도 싫고, 文化林의 나뭇가지 위에서 원숭이처럼 재주 피우는 시인도 싫고, 밥먹듯 약속을 어기는 시인도 싫고, 말끝마다 한숨이 걸려 있는 시인도 싫다.


성질은 못돼 먹어도 시만 잘 쓰면 된다는 시인도 싫고, 시는 못 쓰는 데 마음씨는 기차게 좋은 시인도 싫고, 학연, 지연을 후광처럼 업고 다니며 나풀대는 시인도 싫고, 앉았다 하면 거짓말만 해대는 시인도 싫고, 독버섯을 그냥 버섯이라고 우기는 시인도 싫고, 싫어


2004년 마지막 달, 시인들만 모이는 송년회장에서 가장 못난 시인이 되어 시야 침을 뱉든 말든 술잔만 내리 꺾다 바람 쌩쌩한 골목길에 쭈그려 앉아 싫다, 싫다한 시인들 차례로 게워내고 나니

니체란 사나이, 내 뒤통수를 탁 치며, 그래서 내가 경고했잖아. 같은 동류끼리는 미워하지도 말고 사랑하지도 말라고! 벌써 그 말을 잊은 건 아니겠지? 까르르 웃어 제치더군. 바람 쌩쌩 부는 골목길에서

 

- 시집잡히지 않는 나비(천년의 시작,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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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독자가 있다면 못마땅한 시인도 있으리라. 시를 어마어마하게 고상한 것으로 생각하고, 시인을 엄청나게 고매한 사람으로 여겼던 때가 있었다. 여전히 시는 잘 모르지만 시인에 대해서는 상당히 제한적이긴 하나 직간접으로 경험한 바에 근거하여 나도 조금은 그 느낌을 말할 수 있다. ‘바른생활 사나이를 자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매사 순 보수꼴통 시인도 싫고, 정부지원과는 거의 무관하면서도 어쩌다 1만 명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이 오른 걸 갖고 무슨 독립운동가 인양 으스대는 시인도 싫다. 하지만 시에서 언급한 보기 싫은 시인, 게워내고 싶은 시인, 남의 시를 훔쳐와 제 것처럼 쓰는 시인에 보태어 시인을 싸잡아 더 욕보이고 싶진 않아 관두겠다.

 

 자칫 진도가 나가면 대한민국의 그 어떤 시인도 이 저주에서 온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좋은 시를 쓰고 독자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잘 나가는 시인 가운데도 밉상이 없지는 않다. 가령 어떤 미모의 여성 운전자가 전방상황을 살피지 않고 골목길에서 툭 튀어나오면서 접촉사고를 내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이 여성운전자는 실제로 젊고 아름다운데다가 평소엔 거의 모든 남성들로부터 추앙을 받으며 양보를 이끌어내는 우월한 미모의 소유자다. 그런데 자신이 운전석에 타고 있을 때도 다른 차량이 자신을 위해 양보해줄 것이라 순간 착각하고서 습관적으로 들이밀다 사고를 치는 것이다.

 

 훌륭한 시인 가운데도 가끔 독자나 다른 무명의 시인들을 아예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건방이 몸에 밴 시인이 없지 않다. 시는 잘 쓰는지 몰라도 인간적으로는 솔직히 밥맛이다. 그러나 시는 시인과 엄격히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이 효용성과 수용성 측면에서 온당하며 독자의 심신에도 이롭다. 때로 시는 시인의 광기이며 황홀경이고 로고스이기도 하는 것인데, 독자로서는 다만 취할 것만 삼키고 버릴 것은 간도 보지 말고 내뱉으면 그만이다. 시는 시인의 경험이며 감정이고 직관이며 방향성 없는 사유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인만큼 사물과 현상을 광폭으로 미세하게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다.

 

 시인앨범에 대해서는 과문하여 깊게 논의할 입장이 못 된다. 다만 우리는 그런 시인의 겹눈과 시의 통로를 통해 세상과 폭넓게 사귀는 재미만 구가하면 되는 것이다. '니체란 사나이'가 시인의 '뒤통수를 탁 치며' 경고했던 '같은 동류끼리는 미워하지도 말고 사랑하지도 말라고'한 말에도 입술이 달싹거리지만 그 또한 관두련다. 그동안 시 읽기를 통해 나 스스로의 삶을 가다듬으며 지혜를 얻기도 하였고, 비전문가로서 독자들에게 재미와 교양의 당의를 입혀 시를 소개하면서 적지 않은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20088월에 시작하여 처음도 미약했고 지금도 창대와는 거리가 멀지만 만 9년이 되어간다. 날은 점점 더워져 가는데 '바람 쌩쌩 부는 골목길에서' 이젠 슬슬 몸이 비틀리고 힘도 부쳐 이 짓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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