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나날/허연
강물은 무심하게 이 지지부진한 보호구역을
지나쳐 갑니다. 강물에게 묻습니다.
"사랑했던 거 맞죠?"
"네"
"그런데 사랑이 식었죠?"
"네"
상소 한 통 써놓고 목을 내민 유생들이나, 신념 때문에 기꺼이 화형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장마의 미덕이 있습니
다. 사연은 경전만큼이나 많지만 구구하게 말하지 않는 미덕, 지나간 일을 품평하지 얺는 미덕, 흘러간 일을 그리
워하지도 저주하지도 않는 미덕, 핑계 대지 않는 미덕, 오늘 이 강물은 많은 것을 섞고, 많은 것을 안고 가지만, 아
무것도 토해내지 않았습니다. 쓸어 안고 그저 평소보다 황급히, 쇠락한 영역 한가운데를 모르핀처럼 지나왔을 뿐
입니다. 무언가 쓸려가서는 더는 볼 일이 없다는 건, 결과적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치료 같은 겨죠.
강물에게 기록 같은 건 없습니다.
사랑은 다시 시작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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