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도 길어야 할/이선영
그대와 나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그대와 내가 늘 처음처럼 사랑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마침내 낯익어서 낯설어 버린
서로의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을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대와 내가
거문고의 여러줄 가운데 어긋난 딱 두개줄처럼
끝끝내 묵음으로 울려 왔음을 들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흙속에 마람속에 뼛가루로 재로
영영 묻어 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은
그대 앞에서 내가, 내 앞에서 그대가 늙어가서는 안되겠기에
사랑과 시는 늙어서는 안되겠기에
사랑과 시를 위해서는 짧았으면 싶지만
생활과 핏줄을 위해서는 질기어도 길어야 할
당길 수도 늘릴 수도 없는 이
인생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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