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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는 꽃 아름답고... / 강진의 동백 숲

청포도58 2017. 4. 10. 16:44



[나무를 찾아서] 지는 꽃 아름답고…… 꽃 없어도 좋은 강진의 숲


  삼월 들면서 맨 처음 띄운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렸던 산수유 꽃봉오리의 안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때는 겉껍질이 살짝 갈라진 모습이었지요. 보름 쯤 지나서 띄운 《나무편지》에서는 겉껍질이 조금 더 벌어져서, 살금살금 고개를 내민 노란 꽃잎이 드러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주 정도 지난 이제는 드디어 겉껍질이 거의 다 벌어지고, 안쪽에 웅크리고 있던 꽃망울이 기지개를 켰습니다. 많으면 마흔 송이 가까이 터져나올 꽃송이들이 올망졸망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제일 가운데에서 솟아오른 꽃송이 하나는 벌써 활짝 피었어요. 넉 장의 꽃잎과 네 개의 수술, 하나의 암술. 아! 좁디 좁은 지름 팔밀리미터의 구슬알갱이 꽃봉오리를 뚫고 솟아오르는 생명의 신비입니다. 다른 꽃송이들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활짝 피어날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다음 《나무편지》에서도 이 꽃송이의 안부를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난 주에는 봄마중에 나선 남도의 나무들을 찾아보고 돌아왔습니다. 여러 나무들을 돌아보았습니다만 오늘 편지에서는 전라남도 강진 만덕산의 백련사 동백나무 숲 소식을 전해드리렵니다.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은 우리나라의 동백나무 숲 가운데에는 가장 아름다운 숲이라고 할 만한 숲입니다.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한 숲이기도 합니다. 동백나무 숲 가운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숲은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 외에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 숲(제184호)과 광양 옥룡사 동백나무 숲(제489호),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 숲(제169호), 옹진 대청도 동백나무 자생 북한지(제66호), 거제 학동리 동백나무 숲 및 팔색조 번식지(제233호)가 있습니다. 모두 좋은 동백나무 숲입니다.


  이 가운데 비교적 널리 알려진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 숲을 비롯한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 숲, 옹진 대청도 동백나무 자생 북한지는 동백나무의 생육 특징을 기준으로 한 보존 가치가 더 높은 숲입니다. 이를테면 자생 북한지라는 의미에서 지정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또 거제 학동리 동백나무 숲은 팔색조의 번식지와 관련한 의미가 더 중요한 숲입니다. 그러고 보면, 동백나무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는 아무래도 광양 옥룡사 동백나무 숲과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이 첫손에 꼽힙니다. 또 광양과 강진의 동백나무 숲은 고창 동백나무 숲과 달리, 숲 안에 들어설 수 있다는 점도 좋은 점입니다. 이 봄에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동백나무는 겨울에 빨간 꽃을 피운다 해서 겨울 동冬을 써서 동백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를테면 동백꽃으로 유명한 부산을 비롯한 여러 따뜻한 남쪽 마을에서는 한겨울인 십이월부터 일월 사이에 꽃이 피어납니다. 그러나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는 물론이고, 강진이나 광양의 동백나무는 모두 이른 봄에 삼월 지나야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봄에 피어나는 동백나무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들은 춘백春栢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 대개 순천과 광양에서 매화 꽃이 아름답게 피어날 때와 비슷한 즈음에 광양과 강진의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는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광양과 강진의 동백꽃은 늘 그 주변의 매화와 함께 찾아보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래서 순천 선암사 선암매의 개화 시기에 맞추어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대로 꽃이 피고지는 게 아닌지라, 이번에는 동백나무 꽃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동백나무 꽃은 나뭇가지 위에 싱그럽게 피어있는 것도 좋지만, 싱그러운 모습 그대로 떨어진 상태의 꽃 보는 것도 좋지요. 때로는 숲 안에 조용히 들어서 있을 때 동백 꽃이 그야말로 ‘후드득’ 소리를 내며 낙화하는 절묘한 순간을 경험하는 것 역시 동백나무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아주 좋은 경험입니다. 숲 안에 들어설 수 있는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과 광양 옥룡사 동백나무 숲이 좋다고 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지난 주말에 찾은 강진 백련사 뒷 숲의 동백나무에 꽃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여러 그루의 크고 작은 나무와 늙고 젊은 나무가 섞여 있어서 개화 시기에서 나무마다 차이가 있습니다만, 제가 찾은 지난 주말에 꽃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적잖은 동백나무들이 이미 꽃을 피운 뒤 낙화까지 마친 상태였습니다. 올해의 개화가 좀 빨랐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땅 위에 떨어진 동백꽃도 이미 오래 된 것이 많아서, 시들어 버렸습니다. 땅에 떨어진 채 여전히 싱그러운 모습을 한 낙화 꽃잎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간간이 나뭇가지 위에 매달린 꽃송이들과 채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창 개화를 이룬 나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아쉬울 수밖에요. 하지만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은 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다른 동백나무 숲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크고 오래 된 동백나무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으니까요.


  동백나무는 숨죽인 채 곁에서 바라보아야 그의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 올렸습니다만, 꽃 피었을 때 못지 않게 낙화의 순간을 온몸으로 느껴야 하니까요. 그래서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처럼 숲 안에 들어설 수 있는 건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시기만 잘 맞추면 이 숲에서는 후드득 떨어지는 동백 꽃의 낙화 순간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숲 안 여기저기에 세워진 옛 스님의 부도는 이 숲이 오래도록 사람과 더불어 지켜온 숲이라는 느낌까지 더해줍니다. 여느 큰 절집에서 화려한 모양으로 세운 부도를 일렬로 줄지어 세워놓은 부도전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있는 숲입니다. 그야말로 사람과 나무가 숲을 이룬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꽃이 없어도 충분히 좋은 숲이니, 언제라도 한번쯤 다녀오시기 권해드립니다.


  동백나무 외에 강진 만덕산의 백련사에서 마음을 열고 바라보아야 할 나무로 배롱나무가 있습니다. 산비알에 세운 백련사를 천천히 오르면 절집의 전각 앞에 우뚝 서 있는 매우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규모가 크다거나 수령이 오래 된 나무는 아닙니다만, 사방으로 고르게 펼친 배롱나무 가지의 고운 펼침이 참 좋은 나무이지요. 그냥 스쳐 지나기에는 절집을 지키며 곱게 자란 나무의 자태가 정말 곱습니다. 배롱나무가 원래 가지를 넓게 펼치는 나무이기는 하지만, 절집 앞마당에 홀로 곱게 선 배롱나무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합니다. 그 앞에 서면 바깥 쪽으로 훤히 펼쳐진 강진 앞바다까지 내다보여서 풍경까지 좋습니다.


  봄의 발걸음 따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특히 지난 한 주 동안은 물 속에 잠겨있던 이 땅의 한恨 덩어리가 물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졸였습니다. 오래 기다려온 것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 동안 솟아오른 한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앞으로 다시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할지 벌써부터 가슴이 저려옵니다. 이천십칠 년의 이 땅에 산다는 것은 하릴없이 이토록 가슴 아픈 일입니다.

  지난 해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한 허수경 시인은 〈좋은 일을 기억하는 것은 따뜻하지만 나쁜 일을 기억하는 것은 새록새록 아프다. 그 아픔을 견뎌내어야만 하는 것도 기억의 일〉이라고 수상작인 《너없이 걸었다》에 썼습니다. 이어서 그가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해 쓴 그의 글 한 단락으로 오늘의 《나무편지》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희생된 이들에게 잊히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잊음을 독촉하는 사회가 비인간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누군가의 억울한 일을 잊어버리면서 인간은 짐승이 되어간다. 그 짐승은 인간을 다시 억울한 구석으로 몰고 가면서도 자신이 어떤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관철하려고 한다. 잊음에 저항하는 것은 인간성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몸짓이다.〉 - 허수경, 《너 없이 걸었다》, p 92

- 지는 꽃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3월 27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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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바람재들꽃
글쓴이 : 정가네(김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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