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매화 꽃 피고 …… 숲에서 봄의 기미가 천천히 전해옵니다

첫 매화 꽃 피었다는 소식은 벌써 한 달 쯤 전에 들었습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 겨울바람을 타고 다가온 첫 개화 소식에 마음이 설�습니다. 그리고 보름 쯤 뒤에 새로 피어난 매화 꽃을 만났습니다. 물론 활짝 피어난 건 아니었습니다. 구불구불 용트림하듯 비틀린 가지 끝에 하얀 꽃 몇 송이가 음전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아직 찬 바람 견디기가 버거운 모양입니다. 꽃잎은 하릴없이 축 늘어진 채였습니다. 조금은 안타까운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첫 매화입니다. 언제나 겨울을 뚫고 일어나는 첫 봄꽃 소식은 반갑고, 기특하기만 합니다. 천리포 바닷가 숲에서 자라는 토투어스드래곤매실나무 Prunus mume ‘Tortuous Dragon’라는 매실나무 품종의 나무 이야기입니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매실나무 ○
기원전부터 우리 땅에서 자란 매실나무는 옛 선비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나무이지요. 특히 오래된 매실나무를 선비들은 좋아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매실나무 가운데에 가장 오래 된 나무로 알려진 건 경남 산청 운리 단속사터의 정당매입니다. 650년 쯤 전에 단속사에서 글공부하던 강회백이 손수 심었고, 훗날 강회백이 정당문학이라는 벼슬에 올랐기에 ‘정당매’라는 이름을 얻은 나무입니다. 그러나 강회백이 심은 매실나무는 100년 쯤 살다가 죽었고, 그 자리에 그의 후손들이 새 나무를 심어 키웠다고 하니,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정당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나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차츰 죽음에 다가서는 상태여서, 아쉽기만 합니다. 위의 사진은 십 년 쯤 전의 개화 모습입니다.

정당매가 있는 산청 운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청 사리에는 산천재라는 아담한 서재가 한 채 있습니다. 퇴계 이황과 함께 당대 최고의 학파를 이끌었던 은둔의 선비, 남명 조식의 서재입니다. 산천재 앞마당에도 한 그루의 매실나무가 있습니다. 이 매실나무는 조식이 산천재를 지은 뒤, 손수 심고 애지중지 키워온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식의 호인 ‘남명’을 따서 ‘남명매’라고 부르는 나무입니다. 정당매에 비해 아직은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지만, 역시 오랜 세월의 풍진을 견뎌내기에 힘에 부쳤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봄이면 온 가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매화가 탐매객들을 설레게 합니다.

○ 정당매 남명매와 함께 ‘산청삼매’로 불리던 나무 ○
정당매 남명매와 함께 ‘산청삼매’로 불리는 또 한 그루의 매실나무가 있었습니다. 원정공 하즙이 심어 가꾸었다 해서 ‘원정매’라고 부르던 나무입니다. 고택이 즐비한 산청 남사마을 초입에 자리한 하즙 고택 안뜰에 서 있는 매실나무인데, 이 원정매는 후손들의 살가운 보호에도 불구하고 수명을 다했습니다. 벌써 십년 쯤 전부터 꽃도 잎도 피우지 않고 시커멓게 죽어버린 줄기만 옛 영화를 추억하고 남아있을 뿐입니다. 산청삼매 가운데 한 그루인 원정매가 죽어버린 탓에 어쩔 수 없이 이제 ‘산청삼매’라는 말의 의미는 퇴색하고 말았지만, 원정매 역시 잊지 못할 큰 매실나무임에 틀림없습니다.
어제가 겨울의 끝을 알리는 절기인 대한(大寒)이었습니다. 이십사 절기 가운데 다음 절기는 입춘(立春)입니다. 이제 곧 봄이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직 사람의 마을에서 봄의 기미를 알아채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리포 숲에서 그랬듯이 숲의 나무들은 이미 봄마중 채비를 마쳤습니다. 이 땅에 다시 화려한 매화 꽃 만개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다가오는 봄에도 오래 된 매실나무들이 더 찬란하게 꽃 피우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겨울 아침입니다.
고맙습니다.
- 오래된 매화 ‘산청삼매’를 생각하며 2019년 1월 21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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