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쓴다는 것/조영혜
시를 쓴다는 것은
동지섣달 이른 새벽
관절이 부어 오른 손으로
하얀 쌀 씻어 내리던
엄마 기억하는 일이다
소한의 얼음 두께 녹이며
군불 지피시던
아버지 손등의 긁은 힘줄 기억해내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깊은 잠 깨어 홀로임에 울어보는
무너져 가는 마음의 기둥
꼿꼿이 세우려
참하고 단단한 주춧돌 하나 만드는 일이다
허허한 창 모서리
혼신의 힘으로 버틴
밤새워 흔들리는 그 것, 잠재우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퍼내고 퍼내어도
자꾸만 차 오르는 이끼 낀 물
아낌없이 비워내는 일이다
무성한 나뭇가지를 지나
그 것, 그 죄끄만한
물푸레 나뭇잎 만지는
여백의 숲 하나 만드는 일이다
'문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황 프란치스코 1세"/윤효 (0) | 2014.08.18 |
---|---|
영원(永遠)/문태준 (0) | 2014.08.16 |
적빈 4/곽재구 (0) | 2014.08.12 |
아네스의 노래/이창동 (0) | 2014.08.11 |
가을의 시/장석주 (0) | 2014.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