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시를 쓴다는 것/조영혜

청포도58 2014. 8. 14. 10:02

 

시를 쓴다는 것/조영혜

 

 

시를 쓴다는 것은

동지섣달 이른 새벽

관절이 부어 오른 손으로

하얀 쌀 씻어 내리던

엄마 기억하는 일이다

소한의 얼음 두께 녹이며

군불 지피시던

아버지 손등의 긁은 힘줄 기억해내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깊은 잠 깨어 홀로임에 울어보는

무너져 가는 마음의 기둥

꼿꼿이 세우려

참하고 단단한 주춧돌 하나 만드는 일이다

허허한 창 모서리

혼신의 힘으로 버틴

밤새워 흔들리는 그 것, 잠재우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퍼내고 퍼내어도

자꾸만 차 오르는 이끼 낀 물

아낌없이 비워내는 일이다

무성한 나뭇가지를 지나

그 것, 그 죄끄만한

물푸레 나뭇잎 만지는

여백의 숲 하나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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