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가정방문/반칠환

청포도58 2023. 10. 5. 19:22

 


가정방문/반칠환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저기 저기 감낭구 아래 담임 선생님 가정
방문 오시네
 
오늘 낼 넘기믄 안 오실 줄 알았지
뒤란에 숨으까 산으로 가까,
 
콩밭에 숨으까 수수밭에 숨으까
마음은 동서남북 사방팔방 첫서리하다
 
들킨 것처럼 뿔뿔이 달아나는데
몸은 왜 이리 고구마자루 같으까,
 
옴쭉달싹 못 하고 가슴은 벌렁벌렁 
선생님 벌써 사랍문 없는 삽짝에 들어서시네..
 
선생남 오셨어유? 치란아, 어머니 어디
가셨냐,
밭에 가셨나봐유.
지가 불러올게 잠깐 

기다리세유.
 
엄마, 엄마  선생님 오셨어
열무밭 매던 엄마,허겁지겁 달려 오시는데,
 
펭소에 들어오지 않던 우리 엄마 입성이
왜 이리 선연할까. 치마 저고리 그만두고
 
나무꾼이 감춘 선녀옷 그만두고,
감물 든 큰성 난닝구에,  고무줄 헐건 몸
빼바지
 
넥타이허리띠로 동여매고,
동방위 받는 시째 성 깜장색
훈련화고쳐 신고 달려나오시는데

조자룡이 헌창 쓰듯 흙 묻은 손에
호멩이는 왜 들고 나오시나

 
양푼에 조선오이 삐져놓고.
찬물 한 대접 곁들여놓고,
엄마 옆에 붙어 앉았지만

선생님 말씀 듣기지 않고,
기름때 묻은 사기등잔이,

구멍 난 창호지가,흙 쏟아지는 베름짝이,
쥐오줌에 처진 안방 천정이,
잡풀 돋는 헛간 지붕이 용용 죽겠지  눈 끔쩍이며

선상님 나 여깃수 소릴 치네
주고개 이정골 통틀어 제일 외딴집,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지기 집에 담임 선생님 오신 날,
나 이날 잊을 슨 없었네 잊을 수 없어서

선생님 오신 다음 다음날 일요일날,
나 뒷산에 올라 대낭근 장대로 참낭구
시퍼런 누에고치를 두들겨 털었다네

이놈 따다가 우리 엄마 참낭구
새순처럼 은은히 푸른 비단 치마 저고리 해드려야지

털고 또 털어 대소쿠리 그득 고치  찼지만,
그러나 엄마는 그 고치 내다 팔았고,
나 울면서 그 돈 타다 공책 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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