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겨울 숲을 지나며/이명옥

청포도58 2023. 1. 4. 19:15

 

 

겨울 숲을 지나며/이명옥

 

잿빛이 낮게 덮인 날

어쩐지 낯선 듯 놓인 빈 의자를 지나

암묵으로 잠든 겨울 숲을 걷는다

 

흐린 하늘은 경계를 허물어

더 낮게 내리고

정적에 순응하듯

함박눈 무장무장 내린다

 

길을 지운다

 

앙상해서 더 당당한 겨울나무

삽시간에 눈꽃으로 빛난다

눈부시다

축제다, 순연한 

 

한 사나흘 눈사태에 유배된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내 안의 어두움 몰아내고

눈꽃같이 환한 그리움 피어날까

겹겹의 얼룩,

저 숫눈으로 지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