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이명옥
그대여
지독한 겨울이었지요
끌어안은 어둠이 깊었어요
우울한 심사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마음은 나를 받아줄 틈 하나 없이 단단했지요
그저 봄은
아득하기만 했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역병의 질곡에 갇혀
내 의지는 공염불이었지요
그럼에도 봄은
신기하리만치 에정대로 도착했지요
여느 해처럼 연둣빛 바람과 보슬보슬 봄비로 왔어요
궁색하던 가지에 물오르듯
그렇게 새봄이 그대에게로 가는 길을 놓았어요
내 안의 등피 닦아 그 길 밝게 비출까요
선한 당신, 잘 지내나요
그 눈빛도 여전한가요
당신도 보고 있을 청람빛 봄까치꽃에 마음 실어
이렇게 조신조신 안부 전합니다
당신 어깨에 내린 노랑노랑한 햇살이 참 안온합니다
그 어깨에 기대어 한나절 오수에 잠길까요
그대여
--2022년 문학춘추 여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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