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시를 읽는다/박완서

청포도58 2022. 7. 3. 12:25

시를 읽는다/박완서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 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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