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한 장/천양희
마들역 왼편에
복권만 파는 명당 복권집이 있다
1등 당첨이 열세 번이라고
자랑처럼 나붙은 깃발 아래
사람들이 긴 줄을 잇고 있다
끈질긴 끈 같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본주의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숲속에 들어가 산 스콧 니어링을 생각한다
그가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
그냥 얻어진 횡재니 양심에 찔린다며
복권을 휴지처럼 찢어버렸다고 한다
그 대목에 가서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복권 한 장 찢었을 뿐인데
내가 왜 이렇게 찢어지는 것일까
만일 그 복권이 내 것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이 무슨 굴러온 복이냐며
좋아라 길길이 뛰었을 것이다
숲 속에 들어가 산 니어링과
수락산 밑에 사는 내가 분명 다른 것은
그는 복권을 버렸지만 나는
자존심을 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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