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나는 아무 것도'의 이야기/오정국

청포도58 2020. 4. 15. 10:04



'나는 아무 것도'의 이야기/오정국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머리 위로 구름이 흘러왔다

책을 보면 왜 여기에 밑줄을 쳤을가 싶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깜감한 밤이 오고

불붙은 기차가 벌판 끝으로 사라져갔다 이것은


꿈이 아니기에, 내가 장미의 이름을 부르면 장미꽃이 피어났고

장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장미꽃이 피었다

지곤 했다


난ㄴ 아무 것도 그리워하지 않았지만, 담쟁이가 벽을 타고 담장 저쪽으로

넘어갔다 담장 밖의 비바람과 땜볕을 견디고 있다 그러나

한사코 이쪽에 남아 있는 담쟁이 줄기와

뿌리, 나는


마당가에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발밑의 수맥들이 빠르게 흘러갔다

끓어질 듯 끓어질 듯


끓어지지 않는 이야기, 구름이 구름을 불러오고, 철길이 철길을 끌고 오고,

담쟁이가 담쟁이를  끌고 가는 이야기, '나는 아무 것도' 라는 이야기.

장미와 불타는 기차에게서 빌려온 이야기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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