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아무도 모른다/김사인

청포도58 2019. 8. 19. 11:59



아무도 모른다/김사인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 볓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 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같던 웃음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픔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릿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단지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이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후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고소해하던 옆 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이 옛 무덤들은, 힌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 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이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까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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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아무도 모른다를 배달하며'


가난을 한갓 남루로 만드는 기품있고 충만한 옛 시간들, 지나고 나야만 진정한 가치가 슬그머니 드러나는 옛것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거나 버린 것들, 이제는 기억과 감각과 정서에 기생하면서 바쁜 일상 속에서 가끔씩 드러나는 것들, 아무리 생생하게 재생해도 거품처럼 듬방 꺼지는 것들, 이 보잘 것 없고 누추해 보이던 것들이 지금은 풍요를 누리는 우리의 결핍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쟁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고 한 김수영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추억은 위로와 평안을 주지만 때로는 현실을 견디고 이겨내는 힘이 되기도 하지요.(문학집배원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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