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스크랩] 인식의 힘/ 최승호

청포도58 2018. 7. 3. 07:34


인식의 힘/ 최승호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지는 법이다----니체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
날개 돋친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 시집『대설주의보』(민음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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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한 자는 대담해지는 법이다'라는 니체의 철학적 경구가 붙은 시다. 이 짧은 시는 절망에 대한 인식이 곧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먹이를 찾아 끝없이 먼 사막을 통과해야 하는 도마뱀에겐 짧은 다리가 한계이고 곧 절망이다. 더 이상 기댈 것이 없고 잃을 것도 없다.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인식하고 꿈틀하는 순간 겨드랑이가 스멀거리기 시작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식의 대담한 몸부림이, 그 적분의 결과로 DNA가 형성되면서 결국 ‘날개 돋친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 것이다. 자신의 다리가 핸디캡이 많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어림없는 몸짓이다. 한계를 인식하고 절망의 지점에서 대담해질 때 가능한 도약이다.

 

 자기보다 신체적 조건이 좋은 천적에게 쫓기며 수없이 많은 도마뱀들이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을 것이다. 그런 수천 만 년의 절망이 날개를 돋게 했고 새의 시조인 ‘익룡’이 되었다. 그렇다고 보면 절망이야말로 새로운 도약과 혁명의 출발점인 셈이다. 떠먹여주는 밥에 만족한 돼지는 우리 밖의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 절망적인 자신의 상황을 성찰하고 그 절망을 분명하게 인식할 때라야 비로소 절망을 극복할 수 있다. 절망을 두려워하거나 절망적 상황을 외면하고 인식하려 하지 않을 때 우리 속 돼지로 남는 것이다. 어찌 절망을 두려워하랴. 절망과 도전이 아니었다면 이 세계는 이만큼 진보하지 않았으며 존재하지도 않았으리라.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까지 했다. 그 만큼 절망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이며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 속의 숱한 터닝 포인트와 위대한 인물들의 생애에서 보듯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지구는 좌절의 별’이라는 볼프 슈나이더한의 말처럼 우리는 좌절과 고통이 함께하는 별에 살고 있다. 누구에게나 좌절과 절망의 순간은 있기 마련이지만 중요한 것은 '인식의 힘'을 발휘하느냐에 달려있다. 한 국가와 정치집단의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절망의 최대치에 도달하여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고 잃을 게 없는 상태임을 인식할 때라야 겨드랑이가 가려워지는 법이다. 그러나 참회와 회개 없이 겨드랑이가 가려워지지는 않으리라.

 

 그 ‘인식의 힘’으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스포츠에서는 흔한 일이다. 어제 독일이 스웨덴을 상대로 거둔 극적인 승리로 인해 우리로 하여금 연패에도 불구하고 ‘희망고문’을 이어가게 했다. 물론 불가능이란 없다. 1976년 ‘박스컵’대회 당시 우리와 쌍벽을 이루던 말레이시아와의 경기를 기억한다. 차범근이 후반 7분여를 남기고 1대4로 뒤진 상황에서 내리 3골을 집어넣은 것도 그 중 하나다. 2002월드컵 16강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도 1대 0으로 뒤진 후반 43분경 기적 같은 골로 동점을 만든데 이어 연장후반 터진 안정환의 절묘한 헤딩슛도 기적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1%도 안 되는 경우의 수롤 따지며 ‘마케팅’을 이어가는 게 온당할지는 모르겠다.

 

 독일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져서 16강에도 진출하지 못한다는 결과는 존재할 수 없는 경우의 수이므로 어떤 경기보다 전력을 다할 게 분명하다. 그런 독일을 상대로 두 골차 이상의 승리를 기대한다? 관전태도가 진지해지기는 하겠으나 자칫 헛된 희망고문으로 가뜩이나 한국 축구에 실망한 국민들을 두 번 죽이는 결과가 되진 않을지 염려된다. 손흥민의 투혼을 다시 기대하면서 차라리 절망한 자의 대담함으로 러시아 월드컵 ‘마지막 경기’를 끝내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첫 3전 전패의 결과를 안을지라도 그 지점에서 다시 ‘날개’를 돋게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박지성 해설위원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비해 크게 발전한 부분이 없다. 모든 축구인들이 반성해야한다"는 쓴소리도 귀담아들을 수 있겠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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