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사라진 분노를 위하여/이재무

청포도58 2014. 7. 23. 11:44

 

사라진 분노를 위하여/이재무

 

 

나는 내가 시인인 것이 자랑스럽다

바닥에 떨어진 새의 시체와도 같이 나의

심장은 싸늘히 식어버렸다 나는 이제

분노할 줄을 모른다 지난날 내 생을

다스려온 그 아름다운 분노는

부지런히 죄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내 생을 떠나버렸다 나는 이제

울지 않고도 크게 세상을 말할 줄

알게 되었다 더러운 추문과 스캔들에

두 눈 반짝이는 나는, 시집을 다섯권이나

낸 시인이다 거듭 실패하는 동안

제법 독자들이 취향이나 입맛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분노는 내 생을

불편케 할 분이다 매향리가 미군에

폭격을 당해도 나는 화가 나지 않는다

나는 북한 어린이가 굶어 죽어도 눈물은 커녕

비웃음만 나온다 동남아시아 가난한 나라

밀입국한 나이 어린 노동자들이 산재당해

오 년 치 칠 년 치 임금 고스란히 병원비로

날려버려도 그것은 그들 개인의 불운일 뿐

나는 이제 가슴이 벌집인 양 숭숭 뚫리지도

매맞은 개구리 뒷다리마냥 벌벌

떨리지도 않는다 나 이제 살 만 하다

그러니 청승을 강요하지 말라

나는 이제 길바닥 아무렇게나 놓인

돌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내 몸을

토막 난 막대기로 잘못 알고 함부로

걷어차도 인내에 익숙한 나는 아마

견성한 도인처럼 허허허, 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