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놓았거나 놓쳤거나/천양희

청포도58 2023. 5. 1. 17:04

 

(향이정원의 이 작은 고깔 제비꽃도 다 소중한 꽃중의 하나.~ 그늘이 졌는지 줄기는 길다랗고  꽃 색깔은 연합니다.~

가늘가늘해도  오래도록 놀다가기를.~

 

이른 아침.~

내가 심고 즐겼던 꽃밭과 새주인에게 선물처럼 심어준 다알리아와 칸나, 백합들의 자리를 살펴봅니다.

아파트 베란다에 구근들은 새싹이 나와 키가 쑥쑥 자라는데 향이정원은 잠잠합니다. 낮은 기온 탓이겠지만 머지않아 새싹이 나올 겁니다.

키가 커서 쓰러지지 않게 꼭 묶어줘야할 텐데.~~ 또또  괜한 걱정이겠지요?.~)

 

 

 

 

 

 

놓았거나 놓쳤거나/천양희

 

내가 속해 있는 대낮의 시간

한밤의 시간보다 어두울 때가 있다

어떤 날은 어안이 벙벙한 어처구니가 되고

어떤 날은 너무 많은 나를 삼켜 배부를 때도 있다

나는 때때로 편재해 있고

나는 때대로 부재해 있다

세상에 확실한 무엇이 있다고 믿는 만큼

확실한 오류는 없다고 생각한 지 오래다

불꽃도 타오를 때 불의 꽃이라서

지나가는 빗소리에 깨는 일이 잦다

고독이란 비를 바라보며 씹는 생각인가

결혼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혼에 성공한 것이라던

어느 여성 작가의 당당한 말이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고 내게 중얼거린다

삶은 고질병이 아니라

고칠 병이란 생각이 든다

절대로 잘못한 적 없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물에도 결이 있고 침묵에도 파문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사람이 무서운 건 마음이 있어서란 것도 미리 알았을 것이다

언제부터였나

시간의 넝쿨이 나이의 담을 넘고 있다

누군가가 되지 못해 누구나가 되어

인생을 풍문 듣듯 한다는 건 슬픈 일이지

돌아보니 허물이 허울만큼 클 때도 있었다

놓았거나 놓친 만큼 큰 공백이 있을까

손가락으로 그걸 눌러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쓰고야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