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살아남은 니체들/정숙자

청포도58 2020. 10. 8. 12:04

살아남은 니체들/정숙자

 

그들, 발자국은 뜨겁다

그들이 그런 발자국을 만든 게 아니라

그들에게 그런 불/길이 주어졌던 것이다

 

오른발이 타버리기 전

왼발을 내딛고

왼발 내딛는 사이

오른발을 식혀야 했다

 

그들에겐 휴식이라곤 주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도움이 될 수도 없었다

태어나기 이전에 벌써

그런 불/길이 채워졌기에!

 

삶이란 견딤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 목록은 자

신이 택하거나 설정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럴 수 밖에 없었으므로 왼발과 오른발에(끓임없이) 달빛과 모래를 끼얹을 뿐이었다.

 

우기(雨期)에조차 불/길은 식지 않았다. 혹자는 스스로, 혹자는 느긋이 죽음에 주검을 납부했다...고 머나먼...묘비명을

읽은 자들이... 뒤늦은 꽃을 바치며...대신...울었다.

 

늘 생각해야 했고

생각에서 벗어나야 했던 그들

피해도, 피하려 해도, 어쩌지 못한 불꽃들

결코 퇴화될 수 없는 독백들

물결치는 산맥들

 

강물을 거스르는 서고(書庫)에서, 이제 막 광기(狂氣)에 진입한

니체들의 술잔 속에서...마침내 도달해야 할... 불/길 속에서...

달아나도, 달아나도 좇아오는 세상 밖 숲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