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봄밤/천양희

청포도58 2020. 6. 25. 10:02

봄밤/천양희

 

서쪽을 향해 자란다는

측백나무를 생각하다가

 

북쪽을 향해 봉오리가 솟는다는

목련나무를 생각하다가

 

안뜰에 심으면 큰 인물이 난다는

회화나무를 생각하다가

 

새들이 좋아하는

아가위나무를 생각하다가

 

새가 아니면서 날아다니는

입술박쥐를 생각하다가

 

새이면서 날지 못하는 거위를 생각하는 봄밤

 

눈물을 찍어 새를 그린

화가 이정을 생각하다가

 

한 곡 부를 때마다 모래 한알 신발에 던져

신이 모래로 가득 차아 노래를 그쳤다는 명창 학산수를 생각하다가

 

일생동안 먹을 갈아 구멍낸 벼루가 열 개도 넘었다는

명필 이삼맘을 생각하다가

 

노래를 잘 듣기 위해 자신의 눈을 찌른

약사 사광을 생각하는 봄밤

 

나, 그만 [무서록(無序錄)]을 읽고 말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