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따는 사람/이선영
감 따는 사람/이선영
당신은 감나무에 올라 감을 따고
나는 멀찌감치 앉아서 감 따는 당신을 바라보네
창백한 은사시나무 옆에 주렁주렁 혈색 좋은 감나무
나는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데
아니, 열매는 바라보아야 좋은 것인데
당신은 열매란 꼭 거둬들여야 한다고
감을 달았다는 까닭에 지금 당신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그 감나무처럼
당신도 나무라면 열매를 줄 수 있는 나무가 되기를 바라겠지
그렇다면 나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어
당신이 낑낑대며 감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베면서 감을 따 듯
생을 따고 시를 따는 사람이라면
나는 당신과 당신의 감나무가 함께 겪는 노고를 더러는 안타깝게 더러는 무료하게-
바라 보며
햇빛 받아 빛나는 은사시나무의 평화와 고요와 무료함이-
생이자 시이기를 바라는 사람
감을 따고 있는 당신과 다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그저 그대로일 수 밖에 없는 거리
나란히 서 있는 주황 감나무와 하얀 은사시나무의 그냥 그대로가 좋은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