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쭈글쭈글/ 복효근
쭈글쭈글/ 복효근
잊고 지내서
상자 속에서 쭈글쭈글 쪼글아들어
이제는 어쩌지도 못할 감자 몇 개
물 한 방울 흙 한 줌 없이
제 피와 살을 온통 짜내어
싹을 키웠나보다
저 싹, 싹아지
제 어미의 살 속에 빨대를 박고
세상을 향해 먼저 고개 내밀겠다고
아우성이라니
홍삼 진액 한 상자를 내밀자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는디
얼마나 더 살겠다고,
죽을 때 숨만 질겨진다고
느그들이나 갖다 먹어라 한사코 되돌려주는
쭈글쭈글 감자 껍질 같던 손,
그런다고 되받아 돌아오는 차에 챙겨 넣던
힘줄도 굵던 싹, 싸가지
바라보며 흐뭇한 듯
웃음 피워 물던 그 쭈글쭈글
- 시집 『따뜻한 외면』 (실천문학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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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고 해서 모두 그러하진 않겠으나 많은 어미들은 저 쭈글쭈글한 감자처럼 ‘물 한 방울 흙 한 줌 없이 제 피와 살을 온통 짜내어 싹을 키우’듯 자식을 길러내는 삶을 살았다. 쭈글쭈글한 몸이 될 때까지 어미들은 새싹을 키우고, 새싹은 그 어미의 거친 몸살을 거슬러 제몫의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고향에서 가져온 뒤로 몇 번 삶아먹고선 까맣게 잊었던 상자 속 남은 감자를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이제는 어쩌지도 못할 감자 몇 개’ 어미들이 내뿜는 뭉클한 향기 속에서 ‘제 어미의 살 속에 빨대를 박고 세상을 향해 먼저 고개 내밀겠다고 아우성’치는 저 ‘싹아지’들은 어두운 상자 속만 아니라면 세상 온 사방으로 구석구석 퍼져나갔으리라.
그러고선 짠한 마음에 ‘홍삼 진액 한 상자를’ 사들고 고향의 어머니를 찾는다. 홍삼은 현금을 제외하고는 어르신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선물이다. 홍삼은 누구에게나 맞는 범용의 대표적인 건강식품이기 때문이다. 열이 많은 체질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고 체질에 상관없이 누구나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시중에는 낱개 포장돼 마시기 편리한 홍삼액 제품이 나와 있고 절편, 정환, 농축액 등 다양하게 출시돼 있다. 부모님 몸 생각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가득 담아 전하는 이러한 선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니 나도 어머니 생전에 홍삼캔디 말고는 직접 홍삼을 사다드린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그 ‘홍삼 진액 한 상자’를 한사코 마다하신다.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는디 얼마나 더 살겠다고, 죽을 때 숨만 질겨진다고’ ‘느그들이나 갖다 먹어라 한사코 되돌려주는 쭈글쭈글 감자 껍질 같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런다고 되받아 돌아오는 차에 챙겨 넣던’ 그 ‘싸가지’를 ‘바라보며 흐뭇한 듯 웃음 피워 물던 그 쭈글쭈글’ 어머니. 누구의 어머니인들 그 같은 모습 아니랴. 하지만 보모님과의 ‘거래’가 다 이런 식이라면 그 ‘쭈글쭈글’에 대한 부채감만 더 쌓일 노릇 아닌가. 또 요즘은 한사코 되돌려준다고 그걸 다시 되받아가는 자식의 뒤통수에 대고 구시렁거리거나 입술을 삐쭉 내밀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 홍삼이 좋긴 좋은가 보다. 어제 이정록 시인이 열사의 땅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정관정’을 찾았다. ‘파킨슨 병’에도 효험 있고 기력회복에는 그만이라는 정보를 이미 인터넷에서 확인한 터였다. 가까운 정관정 판매점까지 검색을 마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평소 나도 소소한 주전부리는 챙겨드린 적이 있으나 파킨슨병에 무엇이 좋은지 그것을 문인수 시인에게 사다드릴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속으로 적잖게 놀랐다. 더구나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1시간 정도 ‘특강’을 요청하면서 ‘여비’정도는 챙겨주려고 했으나 그마저 한사코 거부하였다. 그리고 고복수픙의 신나는 노래도 몇 곡 듣고 그로 인해 엄원태와 장옥관 시인의 노래까지 덤으로 듣게 되었는데 그게 다 공짜라니 아무래도 좀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쭈글쭈글’
권순진
The Star Of The Sea / Phil Coul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