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스크랩] 봄에 소박하게 질문하다/ 엄원태

청포도58 2015. 3. 19. 15:13

 

 

봄에 소박하게 질문하다/ 엄원태

 

 

몸 풀린 청량천 냇가 살가운 미풍 아래

수북해서 푸근한 연둣빛 미나릿단 위에

은실삼단 햇살다발 소복하니 얹혀 있고

방울방울 공기의 해맑은 기포들

바라보는 눈자위에서 자글자글 터진다

 

냇물에 발 담근 채 봇둑에 퍼질고 앉은 아낙네 셋

미나리를 냇물에 씻는 아낙네들의 분주한 손들

너희에게 묻고 싶다, 다만,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산자락 비탈에 한 무더기 조릿대들

칼바람도 아주 잘 견뎠노라 자랑하듯

햇살에 반짝이며 글썽이는 잎, 잎들

너희에게도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폭설과 혹한, 칼바람 따윈 잊을 만하다고

꽃샘추위며 황사바람까지 견딜만하다고

그래서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 시집『물방울 무덤』(창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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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냇가의 몸이 풀려 천변에서는 버들강아지가 보송보송 피어오르는 등 완연한 봄기운이 당도해 있지만, 몸은 아직 주춤거려 두꺼운 옷을 쉬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심쩍어하는 여인들은 로맨틱한 플로라 미니 원피스나 프릴 공단 스커트 입기를 주저하는 태도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푸근한 연둣빛 미나릿단’의 봄맛을 서둘러 몸속에 채워 넣기 위해 지난 주말과 휴일에는 청도 한재의 미나리 마을로 가는 길이 미어터졌습니다. 지난 겨울의 ‘칼바람도 아주 잘 견뎠음’을 자랑하고, ‘폭설과 혹한, 칼바람 따윈 잊을 만하다고’ 스스로 대견해하며 몸속의 겨울 더께를 씻어내고 정화코자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겨울을 헤치고나온 거친 숨결이 봄 햇살에 숨을 고릅니다. 바람이 실어다 나르는 봄이 번민을 날려 보내고 은혜로운 삶을 채워 주고 있습니다. 푸른 수액이 흐르는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새 생명의 싹이 보이기 시작해 봉긋봉긋 맺힌 봉오리들이 어여쁘고 눈부십니다. 어둠을 털며 봄이 기지개를 켤 때 대지는 기쁨의 환희로 출렁입니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온 누리에 가슴 열고 희망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태도가 곧 자신의 운명임을 기억하는 새 생명들이 일제히 햇살에 반짝입니다.

 

 얼음 깨지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땅속에선 푸른 기운들이 힘껏 박차 오르는 소리, 꽃망울 터지는 소리,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따위가 죄다 봄의 공기 속에서 화음으로 번집니다. 시원찮은 위세의 ‘꽃샘추위며 황사바람까지 견딜만하다고’ 이제는 견딜만하다고 강단 있게 말합니다. 다시 맞는 새 봄은 축복이고 은총이어야 하며,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다시 사랑 받아야할 것입니다. 사순의 네쨋주에 어김없이 찾아온 이 봄기운으로 가슴깊이 묻어 두었던 회한과 무거움을 토해 버리고 생명의 신비와 부활의 생명을, 새털처럼 가벼움을 깊은 호흡으로 들이 마십니다. 살아서 기쁜 이 놀라운 축복이여!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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